울리는 진동에 탁자가 벌벌 떨었다. 깍지를 낀 두 손을 진지하게 맞붙잡고 지긋이 바라보는 눈매가 살풋 질렸다. 맞은편에서 그 꼴을 약 10분 째 미동없이 지켜보고 있는 친구를 미묘하게 바라보던 찬열이 눈을 감았다. 피곤도 하다, 외우면서 마른 세수를 하는 손가락 틈새로 쏟아지는 것을 보던 얼굴이 난처해졌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찬열이 주저하며 손을 뻗었다. 드디어 진동이 멈춘 핸드폰을 채 잡을 생각도 못한 채 도경수가, 바라보던 그대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야아, 경수야."

  "……."

  "아이 씨, 내가 말주변이 이렇게 없는 줄 몰랐는데."

 

 말끝을 흐리면서 결국 긴 한숨과 함께 경수의 뒷머리를 몇 번 쓸어준 찬열이 등을 감싸 토닥였다.

 

 "…그 반응을 보면 맞네. 그래?"

 "……."

 "그래. 좋아한단 거네."

 

 타인의 입술을 통해 나온 진심에 꿋꿋하게 서서 버티던 몸뚱이가 서서히 허물어졌다. 어깨로 그 작고 뜨거운 열을 받아내며 기다린 끝에 울적함이 가득 고인 웅덩이 같은 목소리로 도경수가 외웠다. 맞아, 근데 아니야. 듣고 있던 찬열이 토닥이다 말고 뒤로 몸을 물리며 물었다. 뭐가 아니야. 다시 돌아본 얼굴에 남은 것은 아직 붉은 눈시울 뿐였다. 고갤 저으며 단단한 방패를 내세우고 교복을 입은 경수가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홀드를 걸어뒀던 화면이 밝아지고 화면 하단으로 부재중 통화 목록의 숫자가 하나 더 늘었다.

 

 '?'

 

 물음표. 말 그대로 물음표, 아직도 넌 내게 미지의 존재야. 처음부터 그랬었지. 혀 가득 쓴맛이 고이는 듯 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 경수가 늦은 답을 꺼냈다.

 

 "모르면 그만이야. 잊어버리면."

 "…야, 도경수 너 설마 나 찾아온 이유가,"

 "부탁이 있어. 좀, 사실 많이 절박해. 들어줄 거지?"

 "와, 진짜 골 때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나한테 기댈 곳이라곤  하나 뿐이잖아. 부탁해."

 

 입 안 여린 살을 꾹 깨물며 도경수가 희미하게 미소했다. 당장 젖어 물러진 살갗을 찢어내는 것처럼, 내게서 널 떼어내는 건 그러하다. 차라리 정말 찢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의미없이 외며 경수는 찬열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빤히 저를 보다가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희미하게 뜬 미소마저 지운 채 눈을 감았다.

 

 마지막 기회야. 다 잊고 희어질 내게 꼭 같은 색을 입힌다면 그 땐…

 

 

+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자꾸 모르는 사람한테서 만나자고 연락 와."

 "스팸 아니야?"

 "그런 것 같진 않은게, 날 되게… 좀 이상하게 불러."

 "이상하다는 기준은 뭐야, 또."

 "말하기 이상한데. 그게 꼭, 내 이름을 절박하게 부르거든."

 "너한테 돈 떼어먹고 안 갚은 거 있나보지."

 "몰라, 하여간 목소리 들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고 짜증나서 차단했어."

 "차단 했는데도 계속 연락이 온다고?"

 "의욕이 넘치는 미지인인가 보지."

 "한 번쯤 얘기나 들어보지 그러냐. 무슨 일이냐고 묻기라도 해보지."

 

 넌지시 건네지는 물음에 D는 가만 눈을 깜박이다가 제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고갤 흔들었다.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그게 좀 이상해."

 "뭐가?"

 "그게 꼭, 그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고 생각하면 다 뭔가 그냥 안 될 것 같은 느낌인 거야."

 "뭐야, 그게."

 "무의식에서 빚어낸 행동이나 생각은 다 이유가 있어서야, 라고 네가 나한테 그랬었지 않아?"

 "그건 그렇다만."

 "그러니까 안 받아."

 

 아니라면 언젠가는, 받을 수도 있겠지. 귀에 쟁쟁히 울리는 진동을 외면하며 시선을 피하는 눈길이 미세하게 떨렸다.

 

 

-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 겨우 내가 되겠지.

/김애란, 비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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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떠보면 항상 같은 자리였다. 되돌이켜보면 머리 위로는 우중충한 회색 구름이 가득이었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결엔 찬 겨울이 실렸었다. 얄팍하게 고인 눈물을 기계적으로 닦아내고 나서 고갤 돌려 바라보면, 늘 그 자리에 박여있던, 너. 너. 입술 위로 올리면 차마 뱉을 수 없었고 혹여 지워질까 그 찰나조차 눈을 돌릴 수 없게 하던. 옛 영화처럼 노이즈가 가득한 일련의 기억들을 조각낸 채 덧붙이면 형체 없는 얼굴이 그려졌다. 꿈속에서 같은 자릴 머물면서 그 얼굴에 손을 뻗어보았다. 모두 지워내고 보니 그려지는 것은 온통 너에 대한 단편들 뿐이다. 내가 이름을 올려 입술에 덧칠한 시의 마침표가 네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꿈같은 일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 헛되게 소망하던 적이 있었다. 어떤 말로도 더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몇 번째인가의 꿈 속에서 경수는 여전히 열여덟이었고, 사각거리는 소릴 내며 종이 위로 미끄러지는 뾰족한 연필 한 자루를 쥐고 있었다. 작게 쓰여진 글씨들이 뚜벅뚜벅 걸어나와 꺾이고 둥근 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단 하나, 이름이었다. 창밖 매미가 한창 울던 자리에도 방금 지나간 소나기가 머문 자국이 작은 웅덩이로 남았다. 분필이 칠판을 긁는 소리와 함께 경수는 웅덩이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하나 둘 고이는 모습을 보면서 숫자를 세었다. 둘, 셋, 다섯, 일곱…… 같은 줄 앞자리 어딘가에 앉은 그 애가 제 턱을 괴며 같은 곳을 응시했다. 지루함이 가득한 얼굴로 멍하게 응시하는 눈에 어린 짙은 쌍커풀이 풀렸다 접히길 반복했다. 짝으로 앉은 찬열이 소리없이 쩍 입을 벌려 하품하는 소리를 따라 곧이어 그 애가 연이어 하품했다. 혹여 누가 볼까 뒤늦게서야 살짝 돌아보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도경수의 얼굴에선 붉은기가 만연했다. 찬열이 눈짓으로 확인하고 소곤거렸다. 야, 너 열 있어? 경수가 곧이어 답했다. 응. 그러고선 갸우뚱, 가만, 이건 무슨 열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까 싶더란다. 똑, 부러진 연필심 소리와 함께 종이 울리고 내려다본 책상 위로 펼쳐진 종합장 위로 가볍게 팔랑이는 이름 하나. 경수는 한숨과 함께 표지를 덮었다. 그리고 되물었다.

 

 정말 이게 무슨 열일까?

 

 그러면 꿈 속에서 그 애가 기다렸단 듯 돌아봐주었다. 경수가 꼭 그리 좋아한단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입술 끝을 말아올리며 웃음 한 번. 제 귀에만 들리는 목소리로 동조했다. 무슨 열일 거라고 생각해? 복잡한 것을 질색하는 어른들에게 이제 십대 후반에 접어든 소년의 감정 따위야 하늘거리며 부는 가을 바람에도 살살 흔들리는 억새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어 더욱이 꼭꼭 숨겨놓고 앓던 답을 다시 되묻는 질문으로 받게 된 경수는 검은 동자를 덱데굴 굴려 느릿하게 초점을 맞췄다. 깜박, 한 번 깜박였을 뿐인데 그 애는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제가 써놓은 종이 위 이름을 내려다보고 곧이어 시선을 마주해오는 짧고 단순한 동작 하나조차도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귓가에 속삭여왔다.

 

 말해 봐, 도경수. 그게 무슨 열인지.

 내 생각에 그건, 네 열이야.

 내 열?

 널 보고 생각할 적마다 오르는 열이니 짊어질 수밖에.

 과감하네.

 

 손을 뻗어오고,

 

 그리고 따듯해.

 

 손을 마주해오는. 한동안 말이 없고 시선만이 마주쳤다. 경수의 눈에 가만 고인 눈물을 닦아주는 그 애는 퍽 자상한 낯으로 눈꼬리를 접어 응시해왔다. 더운 햇빛과 가시지 않은 물비린내가 가득한 좁은 공간이 겨울 눈으로 뒤덮였다. 그 애는 여전히 경수의 시야에 머물렀다. 두툼한 자색 목도리로 단단한 목을 가리고 입술을 파묻은 그는 앞서나가 발자욱을 남기다 뒤돌아섰다. 몇 년째인가 돌아봤던 같은 모습에도 경수의 열은 채 가시지 않았다. 그에게 도경수는 여전히 이름을 알 수 없는 이였다. 알 리가 없었다. 픽 새는 소리 없는 웃음을 흘리며 경수가 다가가 그의 손목께를 잡았다. 알 리 없는 그는 그럼에도 미소로 맞이했다.

 

 내가 아파, 도경수?

 

 알 리가 없었다고 몇 번을 외웠는데. 경수는 낮게 말하며 제 손을 맞잡는 그에게로 한참 있다가야 고갤 끄덕였다.

 

 나 사실 아직도 네가 내게 어떤 열인지 몰라.

 모르는 게 아니라 부정하고 있는 건 아니고?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넌 나한테 너무 가까워.

 왜.

 

 내가 네 시라서?

 도경수에게 아프고 가까운 이름, 이름 없는 열. 김종인은 열여덟의 모습도, 그 이상의 모습도 여지를 두지 않고 손을 맞잡았다. 꿈에서 왜 그렇게 널 보면 눈물이 고였는지 몰라. 경수가 웃으며 종인을 안았다. 남은 것 없이 손바닥에 벚꽃잎 한 장만 흩날려 쥐었다. 그저 쥐었다. 부드럽고 덧없다. 입바람으로 조심히 불어 날려보낸 모양은 붓으로 그려내듯 휘이- 휘 날았다. 그제서야 도경수는 알았다. 그리고 꿈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깨어났다.

 

 "……."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경수의 허리로 단단한 팔이 둘러졌다. 고른 숨소리가 두터운 벽을 허물었다. 언제고 맞대었던 살결이건만 낯설었다. 마음 가는대로 하자니, 지금과 같은 반응이고. 제게 맞물리는 품을 확인하고 둥근 눈을 뜬 채 종인이 팔을 굽혀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왜, 하고 눈으로 되묻는 경수에게로 시선을 내리는 남자의 시선이 퍽 애틋하면서도 의아함이 서렸다. 아침이라 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까끌한 모래 같았다.

 

 "종인아, 감기 걸렸어?"

 "잠 덜 깼어? 어제도 물어봐놓고. 근데 무슨 일이야?"

 "뭐가?"

 "무슨 일로 먼저 안아주느냐고."

 "종인아."

 "응."

 

 도경수가 다시 한 번 손을 뻗어올렸다. 빤히 보던 종인이 손을 맞잡자 그 손등 위로 입술을 찍으며 경수가 해맑게 웃었다.

 

 "대답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 것 같아. 지금 얘기해도 돼?"

 "들어보고 결정할게."

 "네가 과감하고 따듯했다고 잡아줬던 내 열이 어떤 의미인지."

 

 움직임이 멈췄다. 고르던 숨이 흐트러졌다가 겹쳐지는 순간 재차 그를 확인한 열여덟, 스무 살, 그리고 현재의 도경수게로 김종인이 고갤 저었다.

 

 "나도 못한 얘기 있는데."

 "뭐가."

 "널 보기 전마다 나 몇번매번 눈을 감았어."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먼저 돌아서지 못할 만큼, 속눈썹이 다 떨릴 만큼."

 "네가?"

 "네가 그랬던 것처럼."

 

 그 떨림을 네가 듣길 바랐어. 김종인과 도경수의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엉키는 입술 새로 호흡이 오가며 두 사람이 맞는 꿈속으로의 아침으로 소나기가 내렸다.

 

 

 

-

하루에도 몇번씩
눈 감는 소리
그 깊은 속눈썹의 떨림을
그대는 들으소서
/최옥, 그대는 들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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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의 손바닥 안에는 세상이 흩날려 안착한 흔적이 남았다.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짓눌러보면 그것은 눈물이라도 되는 양 곳곳으로 흩어져버렸다. 내리깔은 눈꺼풀 새로 눈송이가 점점이 번져 앉았다. 하늘이 하얗게 열리고 그 한가운데서 도경수는 흰 김을 흘리며 서있었다. 시간이 흘러 제 나이에 지난 일 년을 새겨놓는 것은 새로운 성장을 의미했다. 바람이 힘을 실어준 눈발은 처음엔 제법 사나운 기세였으나 경수가 문을 열고 나섰을 땐 거짓말처럼 순해졌다. 사박이는 소리를 일정하게 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하나였던 소리가 뒤이어 나란히 걷는 소리로 가득찼을 때, 어깨에 얹은 손길이 다정했다.

 

 겨울이잖아.

 

 곱게 눈을 휘며 웃는 얼굴이 익숙했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수는 제 뒤로 이어진 말들에 일순 멍해지고 말았다. 나뭇가지를 꺾어 돌연 내밀고 웃는 얼굴이 시원했다. 맞장구를 치며 어깨동무를 하는 팔이 단단했고, 들꽃으로 엮은 화관을 장난스럽게 경수의 머리에 씌워주는 이의 만족스러운 끄덕임이 이어졌다.

 

 곧 봄이 찾아오고,

 새순이 돋아날테지.

 

 목도리를 길게 늘여뜨리며 풀던 이가 흐드러진 동백꽃을 경수에게 내밀었다.

 

 보고 싶기도 하지만,

 

 넘어온 머리칼을 뒤로 넘기면서 또박또박 말을 받아가는 목소리가 사근사근했다.

 

 돌아오면 우리 곁으로 오면 되니까.

 

경수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나치면서 그들의 눈을 마주했다. 비슷한 홍채 색이었지만 저마다 꼭 다름을 새삼 느끼며 경수가 고갤 끄덕였다. 머리에 씌워진 화관이 주춤하며 내려갈 뻔 한 것을 뒤에서 잡아주며 어깨를 두드려준 이가 눈을 찡긋했다.

 

 이야기 해줄 것이 잔뜩인데. 좀 더 빨리 걸어보는 건 어때?

 알았어요.

 

 너털웃음이 나오는 그대로 경수가 발걸음을 좀 더 재촉했다. 겨울을 따라 걷는 길의 끝에 새하얀 문 하나만 덩그러니 섰다. 뒤에서부터 따라온 목소리들이 부드럽고 상냥하게 등을 밀었다. 열어봐, 도경수. 꾹 눌린 웃음소리에 경수는 놀림을 당하는 것 같았지만 이유 모를 망설임에 문고리를 잡고서도 주춤했다. 새록새록 그리는 얼굴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열어, 열어. 그 다음으로 나가야지, 여기서 만족할래?

 

 도경수의 손가락에는 여러 가지 색의 실들이 가닥마다 묶여있었다. 오색 실들로 묶인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일 때마다 숨죽인 목소리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머물러 있을 거야?

 

 경수가 고갤 저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아― 뒤늦은 소리에 경수를 품에 가득 안은 형체가 웃음으로 화답했다. 쌓인 눈을 금세라도 녹여버릴 것 같은 애틋함에 경수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같이 나아가요.

 

 눈과 새순이 함께 하는 가운데 서서 도경수는 곤히 잠들었다. 깨어나 맞이할 시간까지 고작해야 백일, 남았을 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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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숨을 죽인 가운데 네가 내게로 주입하는 독은 꿀처럼 달콤하다. 어찌할까,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감히 거부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은 상냥하게 홀리는 네 그 눈빛, 오롯이 그것 하나. 곡선을 그려 유려한 입매 끝에 속삭임을 감춰두고 혀를 내밀어 핥아버리는.

 

내가, 너를,

 

나의 우주에는 치명적인 독을 지닌 생명이 배회하며 자욱을 남긴다. 신이시여, 내려보소서. 그를 살피소서. 죄악에 물들지 않도록 굽어 감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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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홍조가 내려앉은 볼을 감싼 소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당최 저러고 언제까지 방에만 박혀 있으려고 그러는지. 못마땅한 듯 중얼이는 어머니의 음성이 귓전에 맴도는 기분이었지만 무엇이라도 좋으니 이것만 가려준다면 무슨 소리를 들어도 상관 없다 싶었다. 경수는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겨우 끄집어냈다.

 

"엄마아…"

"으이구!"

 

혀를 차며 결국 방안에 들어선 어머니의 성난 손길에 붙들린 것은 칙칙한 빛깔의 커튼이었다. 환히 비춰지던 아침 햇살 한 줌조차도 나오지 못하도록 꼼꼼히 막아내고 나서야 돌아보는 얼굴에 여자의 얼굴에 모난 주름이 들어섰다. 언제 떨었냐는 듯 경수는 금세 막내아들's 특급 베냇웃음을 지었다. 무의식의 산물인 그것의 효과는 한 방 끝이었다. 잠시 주춤한 어머니가 한층 차분해진 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햇볕이 싫으면 아예 방을 옮기라니까 말도 안 듣고! 학교엔 언제 나갈 거야?"

"어련히 때 되면 나가겠거니 해줘요."

"내가 정말……."

 

텄다, 텄어. 말년에 내가 왜 너를 낳아서 이런 고생을! 투덜거리는 소리의 끝으로 꽝 소릴 내며 닫힌 방문에 눈을 찔끔 감았던 도경수가 움츠렸던 몸을 천천히 폈다. 길쭉한 다리가 뻗어지면서 무릎 쪽에서 작게 우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운동 부족이긴 하지. 중얼이며 일어선 몸체는 영락없는 빗자루 꼴이었다. 몇 주 전 그나마 붙어가던 살집도 도로 빠져버린 얼굴선은 신경질적으로 느껴지리만치 날카로웠다. 눈두덩이 두드러지면서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부각되어 누가 보면 우스갯말로 눈깔귀신이라고 웃으며 욕을 뱉을 판이었다. 거울속을 빤히 바라보던 경수가 피곤한 듯 눈을 감으며 얼굴을 감쌌다. 언제 붉었냐는 듯 창백한 색으로 돌아온 뺨을 거칠게 쓸면서 잠시 고민하던 경수가 핸드폰을 들었다. 잠금을 풀고나니 홈화면 가득 차는 얼굴에 경수는 잠시 말을 잊었다.

 

"아… 진짜 나 미친 거 아닐까."

 

아니긴, 개뿔. 미친게 확실하지. 볕 때문에 톤이 밝아진 커튼을 우울한 눈으로 지켜보던 도경수가 자조적으로 고갤 저었다. 저것만 보면 자꾸 그게 떠오른단 말이야. 심장에 치명적이야. 심장마비로 비명횡사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지. 더 숨 쉬어서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는 맞지만. 단조로운 셀프디스를 더 이어갈 틈도 없이 때마침 울리는 진동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핸드폰을 울려댔다. 발신인을 확인한 도경수의 목울대가 꿀렁이며 넘어갔다.

 

김 종 인

 

머릿속에서 대피령이 내려졌다. 의식세계의 작은 도경수가 접근금지 바리게이트를 치며 손을 저었다. <에비 지지! 그거 너한테 지지! 네 심장 건강에 매우 안 좋음! 아니면 생사를 가로지르는 마사지 어택 받으려고 작정하셨셈?> 작은 경수가 뭐라고 하던 본 자아의 경수는 금세 잊고 긴장어린 눈으로 액정을 내려봤다. 한 획씩 그어진 이름 석 자가 어쩜 이리 단단한지 모르겠다. 큼, 크흠, 흠! 괜히 헛기침을 하며 조금 잠긴 듯한 목을 풀고 조심스레 통화버튼을 터치하는 손짓이 아주 조심스러웠다.

 

"여보세요?"

- 형. 나예요.

 

순간 하트어택!

 

- 오늘도 안 나와요? 많이 심각한 거 아녜요?

"심, 각하긴. 괜찮아. 그냥 며칠만 쉬면 완전히 낫는다니까 너무, 어, 뭐 그거, 걱정하지 말고."

- 나 아니면 누가 걱정해.

 

짓궂게 웃으면서 덧붙이는 말에 경수가 벌렁이는 왼쪽 가슴 아래 어딘가를 두드렸다. 내 심장아, 좀 닥쵸. 정말 진지하니까 궁서체도 곁들여야겠다. 

 

- 형 안 본지 이틀이나 됐잖아. 보고 싶은데.

 

아이고오 젠자아아앙

 

- 그래도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비이이일어머그으을

 

- 형은? 나 안 보고 싶어요?

"어…"

- 이럴 땐 보고 싶다고 해주는게 정석인데, 경수 형.

 

도경수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가까스로 말을 이어가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통화하는 상대편은 그닥 신경쓰지 않는 듯 그저 밝기만 했다.

 

"…아무튼 걱정 말고. 학교 잘 다녀와."

- 응. 점심 쯤에 다시 전화할게요.

"그래."

- 아, 형!

"왜?"

- 잊어버린 거 없어요?

 

그런 거 챙기고 있을 정신이 지금 내게 남아있질 않단다, 얘야. 한탄하며 다 비워낸 듯한 경수의 두 눈이 종인의 한 마디에 터질 듯 동공이 확장됐다. 지금 이 순간 상대가 제 얼빠진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세상 최고의 위로가 된다는 씁쓸한 후기를 달아놓으면서 도경수는 말을 더듬고 말았다. 숨죽인 종인의 웃음소리에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머릿속 작은 경수는 일찌감치 제일 좋은 전망대를 골라 잡으며 눈가를 씰룩였다. 꼴 좋다, 도경수. 

 

- 좋아해요.

"어, 뭐, 그, 종인,"

- 귀여워죽겠어. 푹 쉬어요.

 

뚝. 일부러라는 듯 끊긴 통화음이 고막을 지나 반대편 귓구멍을 타고 흘렀다. 경수의 뇌리에 강렬히 남은 한 마디가 한참 메아리를 치고 갈 곳을 잃은 두 손이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희극처럼 고개를 우습게 파묻은 경수에게로 방문 너머에서 어머니의 잔소리가 애앵거렸다. 몰라, 지금 아무 소리도 안 들려… …

 

"아, 김종인 진짜 미친 놈― 아니 뭐래!"

 

아니, 아냐 제정신이냐 감히 놈이라니 내 이 주둥이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도경수. 열아홉 신체건강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인 소년이 죄 붉어진 얼굴로 한탄했다. 종인이 들었으면 정색하며 화를 낼 말이었지만 사귄지 불과 사흘 된 제 연하 애인은 아무래도 저를 급성 심장마비로 영안실에 보내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경수는 정말 진심이었다. 아니면 이건 신종 테러일까? 음, 그럴 듯 한데.

 

"아주 그냥 다 해먹어라 그래."

 

혼잣말을 중얼이던 경수가 결국 울먹이며 외쳤다.

 

"왜 그렇게 귀엽기까지 하고 난리야 종인아아…!"

 

나도! 나도 좋아해! 짱 좋아해! 진짜 미치게 좋아해! 인류의 산 보배 김종인! 엘 오 브이 이 럽 종인킴! 종인이랑 같은 세대에 숨 쉬고 살아서 나는 이미 축복받은 삶이야!

차마 면전에 대곤 제정신으로 고백할 수 없는 문장들을 뱉어가며 경수가 얼굴을 감쌌다. 잘 익은 복숭아였다.

 

 

 

 

-

 

남몰래 덕질하던 종인의 선고백을 얼결에 오케이 하고 뒤늦은 멘붕에 휩싸인 종인덕후 경수

햇빛을 피하는 이유 : 세상은 이미 종인이가 밝히고 있는데 우주에서 쏘는 빛덩이를 뭣하러 받아 타고 말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번 카디전력 주제 열아홉을 두고 생각없이 나열하다가 생각보다 끌려서ㅋㅋㅋㅋ짧게나마 단편이라도 써서 이어봐야겠다 으ㅡ으으우

내 안의 경수가 와장창 무너졌는데 그래도.... 이 글 경수는 겸디를 목표로... 경수야 네가 더 귀여우ㅓ(존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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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볕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낯선 느낌에 도경수가 감은 눈을 떴을 때는 태양이 이미 한가운데 떠있었다. 얼떨떨한 가운데 거짓말처럼 그 순간조차 밀려드는 잠기운을 겨우 떨쳐내고 그는 몸을 일으켰다. 기다렸다는 듯 아우성치는 몸뚱이는 삐걱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꼭 어딘가에서 얻어맞은 듯 얼얼한 자욱들로 가득한 걸 확인한 동공이 제대로 초점을 잡았다. 내리깔았던 눈 위로 부서지는 볕이 따가워 손그늘을 만들었더니 마냥 눈부시던 시야에 그림처럼 잡힌 것은 낯선 것들 뿐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희한한 모양의 나무들이 가지를 옆으로 최대한 구부려 양옆으로 우뚝 자리한 가운데,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경수가 홀린 듯 발을 내딛었다. 자박이며 발바닥에 밟히는 풀잎 소리가 고요한 숲의 정적을 깨웠다. 나뭇가지들이 무성한 잎사귀들로 가리고 있는 중심부로 나오고서야 경수는 상황을 인식하고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여기가 어디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낮은 목소리에 대꾸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걸까? 불안해지는 가운데 절로 뜨인 눈이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는 중 푸른 나뭇잎들 사이로 손 하나가 느릿하게 스쳐갔다. 잠깐이었다고 착각할 리가 없으니, 저건 분명 사람이다! 마음이 급해진 경수가 방향을 바꿔 나갔다.

 저기, 잠깐만요!

 부르면서도 경수는 앞서 가는 이의 뒷모습이 상당히 낯이 익다는 것을 깨닫고 뻗었던 손을 주춤거리며 거둘 뻔 했다. 첫째는 불확신이오, 둘째로 찾아든 것은 현타였다. 아무리 닳고 닳도록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까지 볼 건 뭔가 싶었다. 이건 꿈일테지. 도경수에게 지금 보이는 것들은 꿈이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가 여기 자리하겠는가. 의아함이 몸집을 불려 커가고 아득함이 저를 잡아채 끝모를 바닥으로 내팽개치려고 할 때 경수가 그 이름을 담아 나지막이 불렀다.

 김종인?

 혹여 놓칠까 급하게 따라가던 경수의 걸음이 멈춤과 동시에 앞선 그도 우뚝 자리에 섰다. 이윽고 천천히 돌아보는 얼굴을 확인하고야만 경수는 질끈 두 눈을 감았다. 

 형?

 확신이었다. 도경수는 이것이 아무리 생생하다 할지라도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반복이라는 옵션이 가미된 자각몽. 여태 그랬던 것처럼 어차피 깨어나게 되면 다음에 이 꿈을 다시 꾸기까진 전혀 기억하지 못할테지만 이 순간만큼은 셀 수 없는 기억 조각을 하나 더 남긴다. 저를 선배님이라 부르며 살갑게 웃는 소년의 얼굴은 말갛게 핀 꽃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불러주길 기다렸다는 듯 다가오는 그의 얼굴을 아픈 눈으로 지켜보며 경수가 일그러진 미소를 보였다. 거짓말처럼 손가락과 손가락이 얽히고 경수가 그의 품에 안겼다. 도경수는 그것을 끌려들어갔다 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기다렸단 듯이 어깨와 등을 감싸오는 단단한 두 팔과 귓가에 다가오는 숨소리가 해사하게 웃는 종인의 얼굴을 그리도록 만들어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귀가 붉어요.

 웃음소리와 감겨드는 목소리에 경수는 더 버티지 못하고 고갤 수그렸다. 이대로는 부끄러움에 터져 꿈속에서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 .... ...! ...!

 멍한 귓가에 흐릿하게 소리가 잡혀온다. 앞이 그저 검다는 것을 알아차린 경수가 힘겹게 눈꺼풀을 들었다. 주위에 드문드문 몰린 사람들, 눈을 뜨니 아찔하게 아파오는 다리에 대한 인식이 밀려들다가 이어지는 확연한 음성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괜찮아요, 선배? 발목은?"

 김종인이었다. 김종인. 꿈이 아닌. 도경수의 큰 눈이 가만 깜박이며 상황을 정리했다.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던 도중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갤 든 경수는 상대가 얼마 전 옆집에 이사 온 종인임을 확인했다. 웃음기가 없으니 퍽 냉한 얼굴인 종인을 상당히 바보 같은 표정으로 보며, 한 박자 느리게 길을 건너려다 골목에서 나온 오토바이와 거의 충돌할 뻔 한 것을 비교적 침착하게 떠올린 경수는 애써 담담히 답했다. 

 "아. 별로 크게…"
 "삐끗했을 텐데?"

 정확히는, 하려고 했다. 한껏 낮아진 목소리와 함께 얼얼한 발목을 감싸주는 종인의 손길이 세심했다. 경수가 움찔하며 아픔에 얼굴을 찌푸리지 종인이 중얼였다. 부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근처에서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오토바이 운전자에게서 연락처를 받아내고 김종인이 경수를 일으켜세웠다. 

 "못 걸을 정도예요?"
 "그렇게 심하진 않아."
 "알만 하네요."

 애써 무뚝뚝하게 답하는 도경수에게로 한 살 어린 그가 얄궂은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은. 나한테 겨우 기대고 있으면서. 한쪽 팔을 제 어깨로 두르도록 만든 뒤 자신의 자전거 뒷자리를 가리키며 종인이 눈짓했다. 경수의 일편 무뚝뚝해보이는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여기 타라고?"
 "그럼 태워주려고요?"

 안 웃긴데. 김종인이 코를 찡긋하곤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갑작스런 접촉에 당황한 나머지 경수가 내지른 주먹이 종인의 코를 향해 박인 것은 작은 해프닝이었다. 미안하다며 어쩔 줄을 모르는 두 손을 겨우 붙들고 종인이 말했다. 미안하면 내 뒤에 타고 얌전히 집 좀 가요. 

 "……."
 "왜 말이 없어요? 아파?"
 "그런 건 아닌데."
 "그럼 왜요?"

 말이라고 묻냐. 경수는 잠시 주춤하다 대답했다.

"남자 둘이 이러고 가려니 그림이 좀 그래서."

 좀이 아니라 사실은 상당히, 많이. 낮게 덧붙이는 소리는 도경수 자신이 뱉으면서도 실은 종인이 듣지 않았음 했다. 옆집 사는 형이 다쳤는데 그대로 가버리기 난감했던지 착한 김종인은 제 자전거 뒷자리를 내어주고선 집을 향해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종인이 떨어지지 않게 중심 잘 잡으라며 한 마디 했을 때 저도 모르게 잡아버린 허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앞을 보고 바람을 헤집는 김종인, 아픈 곳을 감싸 나를 싣고 가는 김종인. 단순한 호감이라고만 생각했던 감정이 날로 부풀어오름을 깨달은 경수는 종인의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도경수가 말이 없으려니 종인이 고갤 돌리지 않고 말했다.

 "남자 둘이 이러고 있으면 창피해요?"
 "어?"
 "그림이 좀 그렇다며."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리칼이 짙었다.

 "난 상관없지만."

 혼잣말일까? 작게 덧붙이는 그 한 마디에 괜히 가슴만 덜컹이는 기분이었다. 경수는 무어라 답해야 할지 머릿속 실타래가 잔뜩 엉켜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사이에 페달을 밟던 김종인이 농을 하듯 가볍게 말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동생 태우고 가는 기분이라서."
 "뭐야?"

 

 동생? 동새-앵? 장난기가 다분한 그 소리에 경수가 어이없단 듯 되풀이하는 단어를, 종인은 그저 곱씹으며 시원하게 웃었다. 선배님은 교복 입고 있으면 중학생 같아 보이거든요.
 
 "제가 좀 성숙해 보이잖아요. 남들 보기엔 형 동생으로 보이지 않을까?"
 "……."
 "미안해요. 근데 그만큼 어려보인단 뜻이에요."

 혹시 기분 상하셨어요? 넌지시 묻는 소리에 경수는 보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고개만 살짝 가로저었다. 대답없는 뒤편으로 종인이 결국 고갤 틀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너머에서 도경수가 기다렸단 듯 눈을 마주하며 분명한 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말고 형이라고 불러."
 "네?"
 "그냥, 그건 너무…"

 잠시 다물린 입술이 뻐끔였다. 거리감 느껴지잖아. 빙 돌아 풀어낸 진심을 차마 뱉을 용기가 없었다.

 "…딱딱해서."
 "그건 그렇죠?"

 경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김종인이 이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형도 제 이름 불러주세요."
 "어?"
 "매번 마주치면 제가 먼저 부르니 불릴 기회가 없었잖아요."

 형 동생 텄다는 기념으로. 그리고 넌지시 바라보는 시선에 생각할 틈 없이 소리가 나섰다.

 "김종인."

 종인이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며 천천히 고갤 앞으로 돌렸다. 그보다 더 느릿하게 외는 말에 경수는 결국 시선을 떨구고 말았다.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형 목소리 듣기 좋아요."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키는 것은 꽤 코끝이 멍했다. 도경수는 들리지 않을 소리로 눈을 감았다. 네 목소리보다 듣기 좋은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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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카디전력 주제 들장미 쓰다가... 중간에 의욕상실 중단ㅜㅜ
붉어진 경수더러 장미꽃 같다고 웃는 종인이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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