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홍조가 내려앉은 볼을 감싼 소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당최 저러고 언제까지 방에만 박혀 있으려고 그러는지. 못마땅한 듯 중얼이는 어머니의 음성이 귓전에 맴도는 기분이었지만 무엇이라도 좋으니 이것만 가려준다면 무슨 소리를 들어도 상관 없다 싶었다. 경수는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겨우 끄집어냈다.

 

"엄마아…"

"으이구!"

 

혀를 차며 결국 방안에 들어선 어머니의 성난 손길에 붙들린 것은 칙칙한 빛깔의 커튼이었다. 환히 비춰지던 아침 햇살 한 줌조차도 나오지 못하도록 꼼꼼히 막아내고 나서야 돌아보는 얼굴에 여자의 얼굴에 모난 주름이 들어섰다. 언제 떨었냐는 듯 경수는 금세 막내아들's 특급 베냇웃음을 지었다. 무의식의 산물인 그것의 효과는 한 방 끝이었다. 잠시 주춤한 어머니가 한층 차분해진 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햇볕이 싫으면 아예 방을 옮기라니까 말도 안 듣고! 학교엔 언제 나갈 거야?"

"어련히 때 되면 나가겠거니 해줘요."

"내가 정말……."

 

텄다, 텄어. 말년에 내가 왜 너를 낳아서 이런 고생을! 투덜거리는 소리의 끝으로 꽝 소릴 내며 닫힌 방문에 눈을 찔끔 감았던 도경수가 움츠렸던 몸을 천천히 폈다. 길쭉한 다리가 뻗어지면서 무릎 쪽에서 작게 우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운동 부족이긴 하지. 중얼이며 일어선 몸체는 영락없는 빗자루 꼴이었다. 몇 주 전 그나마 붙어가던 살집도 도로 빠져버린 얼굴선은 신경질적으로 느껴지리만치 날카로웠다. 눈두덩이 두드러지면서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부각되어 누가 보면 우스갯말로 눈깔귀신이라고 웃으며 욕을 뱉을 판이었다. 거울속을 빤히 바라보던 경수가 피곤한 듯 눈을 감으며 얼굴을 감쌌다. 언제 붉었냐는 듯 창백한 색으로 돌아온 뺨을 거칠게 쓸면서 잠시 고민하던 경수가 핸드폰을 들었다. 잠금을 풀고나니 홈화면 가득 차는 얼굴에 경수는 잠시 말을 잊었다.

 

"아… 진짜 나 미친 거 아닐까."

 

아니긴, 개뿔. 미친게 확실하지. 볕 때문에 톤이 밝아진 커튼을 우울한 눈으로 지켜보던 도경수가 자조적으로 고갤 저었다. 저것만 보면 자꾸 그게 떠오른단 말이야. 심장에 치명적이야. 심장마비로 비명횡사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지. 더 숨 쉬어서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는 맞지만. 단조로운 셀프디스를 더 이어갈 틈도 없이 때마침 울리는 진동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핸드폰을 울려댔다. 발신인을 확인한 도경수의 목울대가 꿀렁이며 넘어갔다.

 

김 종 인

 

머릿속에서 대피령이 내려졌다. 의식세계의 작은 도경수가 접근금지 바리게이트를 치며 손을 저었다. <에비 지지! 그거 너한테 지지! 네 심장 건강에 매우 안 좋음! 아니면 생사를 가로지르는 마사지 어택 받으려고 작정하셨셈?> 작은 경수가 뭐라고 하던 본 자아의 경수는 금세 잊고 긴장어린 눈으로 액정을 내려봤다. 한 획씩 그어진 이름 석 자가 어쩜 이리 단단한지 모르겠다. 큼, 크흠, 흠! 괜히 헛기침을 하며 조금 잠긴 듯한 목을 풀고 조심스레 통화버튼을 터치하는 손짓이 아주 조심스러웠다.

 

"여보세요?"

- 형. 나예요.

 

순간 하트어택!

 

- 오늘도 안 나와요? 많이 심각한 거 아녜요?

"심, 각하긴. 괜찮아. 그냥 며칠만 쉬면 완전히 낫는다니까 너무, 어, 뭐 그거, 걱정하지 말고."

- 나 아니면 누가 걱정해.

 

짓궂게 웃으면서 덧붙이는 말에 경수가 벌렁이는 왼쪽 가슴 아래 어딘가를 두드렸다. 내 심장아, 좀 닥쵸. 정말 진지하니까 궁서체도 곁들여야겠다. 

 

- 형 안 본지 이틀이나 됐잖아. 보고 싶은데.

 

아이고오 젠자아아앙

 

- 그래도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비이이일어머그으을

 

- 형은? 나 안 보고 싶어요?

"어…"

- 이럴 땐 보고 싶다고 해주는게 정석인데, 경수 형.

 

도경수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가까스로 말을 이어가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통화하는 상대편은 그닥 신경쓰지 않는 듯 그저 밝기만 했다.

 

"…아무튼 걱정 말고. 학교 잘 다녀와."

- 응. 점심 쯤에 다시 전화할게요.

"그래."

- 아, 형!

"왜?"

- 잊어버린 거 없어요?

 

그런 거 챙기고 있을 정신이 지금 내게 남아있질 않단다, 얘야. 한탄하며 다 비워낸 듯한 경수의 두 눈이 종인의 한 마디에 터질 듯 동공이 확장됐다. 지금 이 순간 상대가 제 얼빠진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세상 최고의 위로가 된다는 씁쓸한 후기를 달아놓으면서 도경수는 말을 더듬고 말았다. 숨죽인 종인의 웃음소리에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머릿속 작은 경수는 일찌감치 제일 좋은 전망대를 골라 잡으며 눈가를 씰룩였다. 꼴 좋다, 도경수. 

 

- 좋아해요.

"어, 뭐, 그, 종인,"

- 귀여워죽겠어. 푹 쉬어요.

 

뚝. 일부러라는 듯 끊긴 통화음이 고막을 지나 반대편 귓구멍을 타고 흘렀다. 경수의 뇌리에 강렬히 남은 한 마디가 한참 메아리를 치고 갈 곳을 잃은 두 손이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희극처럼 고개를 우습게 파묻은 경수에게로 방문 너머에서 어머니의 잔소리가 애앵거렸다. 몰라, 지금 아무 소리도 안 들려… …

 

"아, 김종인 진짜 미친 놈― 아니 뭐래!"

 

아니, 아냐 제정신이냐 감히 놈이라니 내 이 주둥이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도경수. 열아홉 신체건강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인 소년이 죄 붉어진 얼굴로 한탄했다. 종인이 들었으면 정색하며 화를 낼 말이었지만 사귄지 불과 사흘 된 제 연하 애인은 아무래도 저를 급성 심장마비로 영안실에 보내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경수는 정말 진심이었다. 아니면 이건 신종 테러일까? 음, 그럴 듯 한데.

 

"아주 그냥 다 해먹어라 그래."

 

혼잣말을 중얼이던 경수가 결국 울먹이며 외쳤다.

 

"왜 그렇게 귀엽기까지 하고 난리야 종인아아…!"

 

나도! 나도 좋아해! 짱 좋아해! 진짜 미치게 좋아해! 인류의 산 보배 김종인! 엘 오 브이 이 럽 종인킴! 종인이랑 같은 세대에 숨 쉬고 살아서 나는 이미 축복받은 삶이야!

차마 면전에 대곤 제정신으로 고백할 수 없는 문장들을 뱉어가며 경수가 얼굴을 감쌌다. 잘 익은 복숭아였다.

 

 

 

 

-

 

남몰래 덕질하던 종인의 선고백을 얼결에 오케이 하고 뒤늦은 멘붕에 휩싸인 종인덕후 경수

햇빛을 피하는 이유 : 세상은 이미 종인이가 밝히고 있는데 우주에서 쏘는 빛덩이를 뭣하러 받아 타고 말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번 카디전력 주제 열아홉을 두고 생각없이 나열하다가 생각보다 끌려서ㅋㅋㅋㅋ짧게나마 단편이라도 써서 이어봐야겠다 으ㅡ으으우

내 안의 경수가 와장창 무너졌는데 그래도.... 이 글 경수는 겸디를 목표로... 경수야 네가 더 귀여우ㅓ(존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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