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전력 #블랙리스트

E-DOI 2016. 3. 12. 23:46

 

 울리는 진동에 탁자가 벌벌 떨었다. 깍지를 낀 두 손을 진지하게 맞붙잡고 지긋이 바라보는 눈매가 살풋 질렸다. 맞은편에서 그 꼴을 약 10분 째 미동없이 지켜보고 있는 친구를 미묘하게 바라보던 찬열이 눈을 감았다. 피곤도 하다, 외우면서 마른 세수를 하는 손가락 틈새로 쏟아지는 것을 보던 얼굴이 난처해졌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찬열이 주저하며 손을 뻗었다. 드디어 진동이 멈춘 핸드폰을 채 잡을 생각도 못한 채 도경수가, 바라보던 그대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야아, 경수야."

  "……."

  "아이 씨, 내가 말주변이 이렇게 없는 줄 몰랐는데."

 

 말끝을 흐리면서 결국 긴 한숨과 함께 경수의 뒷머리를 몇 번 쓸어준 찬열이 등을 감싸 토닥였다.

 

 "…그 반응을 보면 맞네. 그래?"

 "……."

 "그래. 좋아한단 거네."

 

 타인의 입술을 통해 나온 진심에 꿋꿋하게 서서 버티던 몸뚱이가 서서히 허물어졌다. 어깨로 그 작고 뜨거운 열을 받아내며 기다린 끝에 울적함이 가득 고인 웅덩이 같은 목소리로 도경수가 외웠다. 맞아, 근데 아니야. 듣고 있던 찬열이 토닥이다 말고 뒤로 몸을 물리며 물었다. 뭐가 아니야. 다시 돌아본 얼굴에 남은 것은 아직 붉은 눈시울 뿐였다. 고갤 저으며 단단한 방패를 내세우고 교복을 입은 경수가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홀드를 걸어뒀던 화면이 밝아지고 화면 하단으로 부재중 통화 목록의 숫자가 하나 더 늘었다.

 

 '?'

 

 물음표. 말 그대로 물음표, 아직도 넌 내게 미지의 존재야. 처음부터 그랬었지. 혀 가득 쓴맛이 고이는 듯 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 경수가 늦은 답을 꺼냈다.

 

 "모르면 그만이야. 잊어버리면."

 "…야, 도경수 너 설마 나 찾아온 이유가,"

 "부탁이 있어. 좀, 사실 많이 절박해. 들어줄 거지?"

 "와, 진짜 골 때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나한테 기댈 곳이라곤  하나 뿐이잖아. 부탁해."

 

 입 안 여린 살을 꾹 깨물며 도경수가 희미하게 미소했다. 당장 젖어 물러진 살갗을 찢어내는 것처럼, 내게서 널 떼어내는 건 그러하다. 차라리 정말 찢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의미없이 외며 경수는 찬열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빤히 저를 보다가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희미하게 뜬 미소마저 지운 채 눈을 감았다.

 

 마지막 기회야. 다 잊고 희어질 내게 꼭 같은 색을 입힌다면 그 땐…

 

 

+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자꾸 모르는 사람한테서 만나자고 연락 와."

 "스팸 아니야?"

 "그런 것 같진 않은게, 날 되게… 좀 이상하게 불러."

 "이상하다는 기준은 뭐야, 또."

 "말하기 이상한데. 그게 꼭, 내 이름을 절박하게 부르거든."

 "너한테 돈 떼어먹고 안 갚은 거 있나보지."

 "몰라, 하여간 목소리 들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고 짜증나서 차단했어."

 "차단 했는데도 계속 연락이 온다고?"

 "의욕이 넘치는 미지인인가 보지."

 "한 번쯤 얘기나 들어보지 그러냐. 무슨 일이냐고 묻기라도 해보지."

 

 넌지시 건네지는 물음에 D는 가만 눈을 깜박이다가 제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고갤 흔들었다.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그게 좀 이상해."

 "뭐가?"

 "그게 꼭, 그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고 생각하면 다 뭔가 그냥 안 될 것 같은 느낌인 거야."

 "뭐야, 그게."

 "무의식에서 빚어낸 행동이나 생각은 다 이유가 있어서야, 라고 네가 나한테 그랬었지 않아?"

 "그건 그렇다만."

 "그러니까 안 받아."

 

 아니라면 언젠가는, 받을 수도 있겠지. 귀에 쟁쟁히 울리는 진동을 외면하며 시선을 피하는 눈길이 미세하게 떨렸다.

 

 

-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 겨우 내가 되겠지.

/김애란, 비행운